윈디하나의 누리사랑방. 이런 저런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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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야기
디아블로3 서버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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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battle.net 의 공지사항 캡처



- 6월 10일 일요일 오후 10시부터 6월 11일 월요일 오후 8시까지 무려 22시간이나 했네요. 결국 중복 아이템 제거하는군요.

- 아직 안하고 있는 난 불구경 하는 중입니다. 커뮤니티의 대체적인 의견은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네요. 원래 이번주부터 휴가 내면서 달릴려고 했는데 맘대로 안되겠군요.

- 현재 동접이 60만이라고 하네요. 블리자드에서 본 아시아섭의 물리적 한계는 50만이라 하구요. 그래서 중국IP를 차단하고 아시아 접속 일부를 북미로 돌려놨는데도, 다시 찼다는 군요. 그래서 다운.

- 여기에 클라우드기술을 접목하는건 불가능합니다. 클라우드는 한대의 서버를 여러 개로 쪼개서 사용하는 방법이거든요. 지금은 그 한대의 서버가 풀로 차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죠.

- 그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건 클러스터링인데 이것도 답이 없을듯 하네요. 서버 수만대가 있어도 이걸 하나의 서버처럼 묶는 방법은 현재 없습니다. 현재 기술로는 수백대 정도까지입니다. 클러스터의 성능은 인터커넥트에 좌우됩니다만, 인터커넥트도 현재 기술로는 150Gbit 정도가 한계입니다. 인피니밴드도 규격은 EDR 12X까지 있지만 실용화는 FDR 12X까지이니까요. FDR 12X의 이론상 속도는 163.64Gbit/s 입니다.

- 한마디로 디아블로3를 너무 많이 팔았다는거죠. (아니면 하루 종일 하는 사람이 블리자드 예측보다 많았다는 거)

- 아니면 '대한민국'서버를 만들어 대한민국 전용으로 만들어주던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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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시사,사회
오키나와 전투, 히메유리 학도대

- 예전에 오키나와의 후텐마기지에 대해서 쓴 적이 있었죠. 요즘 전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서 관련 자료,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재미있게 읽는 중입니다. 엔하위키에 재미있는 글이 많네요. 그 중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태평양 전쟁에 관심 많죠. 예전에 퍼시픽이라는 전쟁 드라마를 볼 때에도 많이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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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지도



-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는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져 일본이 이미 기울기 시작했을때 일본 본토에서 수행한 전쟁입니다. 그 전까지는 모두 일본 밖에서 일어난 전투였습니다. 이중 오키나와 전투는 연합군(주로 미군)과 일본에 가장 큰 피해를 준 전투이자 2차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죠.

- 오키나와 전투(1945.04.01~1945.06.23, 미군의 코드네임은 Iceburg)는 미군 18만, 일본군 12만이 싸워서 결국 미군이 승리한 전투입니다만, 미군의 피해가 전사 2만, 부상 8만으로 2차 대전중에서 가장 컸죠. 일본의 피해는 11만 전사입니다. 옥쇄(玉碎, 옥처럼 부서진다는 의미로 깨끗한 죽음을 의미, 전사 읽으면서 가장 읽기 싫은 말이네요), 그냥 바보같은 자살이라고 적겠습니다. 적에게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일본의 황당한 신념이죠. 이 때문에 일본의 피해는 부상이 거의 없습니다. 부대에서 패배할것에 대비해, 즉 옥쇄를 위해 청산가리를 준비했을 정도니까요. 오키나와의 민간인 피해도 컸는데, 민간인도 12만명 사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군은 주민과 같이 자살해서 그렇습니다. 왜 민간인까지 걸고 넘어진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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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4.13 연합군의 오키나와 상륙


- 이전글에도 썻듯 오키나와는 일본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라입니다. 그냥 일본이 병합시킨거죠. 따라서 그들은 일본을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재미있는건 지금도 독립에 대한 의지는 없는걸로 보입니다. 울나라 같았으면 가만히 안 있었을텐데요.

- 오키나와 전투를 회자할 때 빠지면 안되는게 히메유리 학도대(ひめゆり学徒隊)입니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게 이상한데 이건 일본의 의도적으로 감춘것이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잘한 건 아니니까요. 일본은 전쟁 막바지에 물자가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해지자 오키나와사범학교여자부와 오키나와현립제1고등여학부의 여학생들을 1944.12부터 종군간호병으로 근무하게 합니다. 법률적 근거가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이때 220여명의 학생과 교사가 징집되었는데 이중 120여명이 전사합니다. (하지만 전사자중 상당수는 옥쇄한거겠죠) 패전이 짙어진 전쟁 막바지에, 파릇파릇한 어린 여학생들이 전장에서 왔다갔다 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하시겠지만, 그건 논외로 치고요. 그래도 나름 후방이었지만 이미 제공권을 연합군이 장악했기에 후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결국 6월 13일 미군이 들이닥치자 해산합니다만, 말이 좋아 해산이지 포탄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해산시킨겁니다. '니가 알아서 해라'밖에 안되죠. 전형적인 책임 회피기도 합니다.

- 히메유리 학도대의 희생은 전후에 이상하게 해석됩니다. 아름답고 순결한 소녀들이 미군에 의해 희생된거라구요. 미군의 총포에 죽은건 맞지만, 사실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을 방패 막이로 사용한 것이 정확하죠. 전형적인 물타기라고나 할까요. 무엇 때문에 연합군이 그곳에서 전투를 했는지는 빼놓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 이런걸 보면 일본의(특희 우익들의) 반전 의식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전쟁은 싫다. 그래서 반전이다.'라는 겁니다. 정작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잘못이고 책임지라 하지만 이건 애써 외면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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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되기 전의 히메유리 학생들



- 어쩄든 오키나와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미군은 전쟁을 빨리 끝낼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당시 일본은 일본 전체의 옥쇄를 말하며 끝까지 투항할 것이라고 호언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초에 개발이 완료된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가 끝나고 2개월 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됩니다. 다시 3일 뒤에난 나가사키에도 투하되죠. 이후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합니다. 일본이 이때 항복 안했으면 아예 전멸했을수도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 이후 수립된 미군의 작전계획인 "Operation Downfall" 을 보면, 아예 일본의 전멸을 목표로 했습니다. (카미가제, 옥쇄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미군은 항복하는 주민들은 전부 받아줬습니다. 아이스버그 작전에서도 점령후 주민들에게 줄 물자도 충분히 준비했으니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만, 일본이 끝까지 항복 안했으면 부족한 군인들을 우리나라에서 징병해갔겠지만,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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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Down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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