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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시사,사회
오키나와 전투, 히메유리 학도대

- 예전에 오키나와의 후텐마기지에 대해서 쓴 적이 있었죠. 요즘 전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서 관련 자료,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재미있게 읽는 중입니다. 엔하위키에 재미있는 글이 많네요. 그 중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태평양 전쟁에 관심 많죠. 예전에 퍼시픽이라는 전쟁 드라마를 볼 때에도 많이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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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지도



-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는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져 일본이 이미 기울기 시작했을때 일본 본토에서 수행한 전쟁입니다. 그 전까지는 모두 일본 밖에서 일어난 전투였습니다. 이중 오키나와 전투는 연합군(주로 미군)과 일본에 가장 큰 피해를 준 전투이자 2차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죠.

- 오키나와 전투(1945.04.01~1945.06.23, 미군의 코드네임은 Iceburg)는 미군 18만, 일본군 12만이 싸워서 결국 미군이 승리한 전투입니다만, 미군의 피해가 전사 2만, 부상 8만으로 2차 대전중에서 가장 컸죠. 일본의 피해는 11만 전사입니다. 옥쇄(玉碎, 옥처럼 부서진다는 의미로 깨끗한 죽음을 의미, 전사 읽으면서 가장 읽기 싫은 말이네요), 그냥 바보같은 자살이라고 적겠습니다. 적에게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일본의 황당한 신념이죠. 이 때문에 일본의 피해는 부상이 거의 없습니다. 부대에서 패배할것에 대비해, 즉 옥쇄를 위해 청산가리를 준비했을 정도니까요. 오키나와의 민간인 피해도 컸는데, 민간인도 12만명 사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군은 주민과 같이 자살해서 그렇습니다. 왜 민간인까지 걸고 넘어진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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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4.13 연합군의 오키나와 상륙


- 이전글에도 썻듯 오키나와는 일본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라입니다. 그냥 일본이 병합시킨거죠. 따라서 그들은 일본을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재미있는건 지금도 독립에 대한 의지는 없는걸로 보입니다. 울나라 같았으면 가만히 안 있었을텐데요.

- 오키나와 전투를 회자할 때 빠지면 안되는게 히메유리 학도대(ひめゆり学徒隊)입니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게 이상한데 이건 일본의 의도적으로 감춘것이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잘한 건 아니니까요. 일본은 전쟁 막바지에 물자가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해지자 오키나와사범학교여자부와 오키나와현립제1고등여학부의 여학생들을 1944.12부터 종군간호병으로 근무하게 합니다. 법률적 근거가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이때 220여명의 학생과 교사가 징집되었는데 이중 120여명이 전사합니다. (하지만 전사자중 상당수는 옥쇄한거겠죠) 패전이 짙어진 전쟁 막바지에, 파릇파릇한 어린 여학생들이 전장에서 왔다갔다 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하시겠지만, 그건 논외로 치고요. 그래도 나름 후방이었지만 이미 제공권을 연합군이 장악했기에 후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결국 6월 13일 미군이 들이닥치자 해산합니다만, 말이 좋아 해산이지 포탄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해산시킨겁니다. '니가 알아서 해라'밖에 안되죠. 전형적인 책임 회피기도 합니다.

- 이게 전후에 이상하게 해석됩니다. 아름답고 순결한 소녀들이 미군에 의해 희생된거라구요. 미군의 총포에 죽은건 맞지만, 사실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을 방패 막이로 사용한 것이 정확하죠. 전형적인 물타기라고나 할까요. 무엇 때문에 연합군이 그곳에서 전투를 했는지는 빼놓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 일본의(특희 우익들의) 반전 의식은 우리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도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전쟁은 싫다. 그래서 반전이다.'라는 겁니다. 정작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잘못이고 책임지라 하지만 이건 애써 외면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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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미군은 전쟁을 빨리 끝낼수 있는 방안을 찾죠. 당시 일본은 일본 전체의 옥쇄를 말하며 끝까지 투항할 것이라고 호언합니다. 그래서 연초에 개발이 완료된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가 끝나고 2개월 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됩니다. 다시 3일 뒤에난 나가사키에도 투하되죠. 이후 일본은 15일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합니다. 일본이 이때 항복 안했으면 아예 전멸했을수도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작전 이후 수립된 미군의 작전계획인 Operation Downfall 을 보면, 아예 일본의 전멸을 목표로 했습니다. (카미가제, 옥쇄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미군은 항복하는 주민들은 전부 받아줬습니다. 아이스버그 작전에서도 점령후 주민들에게 줄 물자도 충분히 준비했으니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만, 일본이 그때 항복 안했으면 부족한 군인들을 우리나라에서 징병해갔겠지만,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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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Down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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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http://windy.luru.net/943
히메유리 학도대: http://www.himeyuri.or.jp/